우주 전쟁
수많은 지구 침공 이야기들이 있지만, 짧으면서도 이토록 그럴 듯하게 인류의 암담한 이미지를 독자들의 뇌리에 남기는 SF 판타지 소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파옥초의 「우주전쟁」에서 바이러스는 위력이 덜하고 적의적이지도 않고, 친밀하게까지 해 보이지만, 그것의 진화과정과 점차 인류를 전멸시키는 패턴은 매우 독특하고 기이하다. 바이러스로 인해 모든 타인이 적이 된 폐허의 도시에서 남자는 숨어지내다 유일한 방문자를 맞이한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죽음 직전의 여자는 어느 연구소 직원인 듯하다. 남자는 여자를 자신의 은신처로 데려와 수시로 기저귀를 채워주고 지극정성 몸을 씻어주며 보살핀다. 그리고 여자가 몸을 회복할 무렵 그녀가 찾는 운석에 초토화된 지구를 구할 유일한 해결책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소설집의 다른 소설인 「첫눈」 또한 미래 소설로 분류할 수 있다. 기억제거 수술로 인간들은 모두 행복하다. 상처 입고 아픈 기억들을 모두 지우고 새 삶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슨 까닭인지, 인간들을 구원해주는 편리한 기억 제거 수술을 받지 않고, 과거의 기억을 그대로 지니고 살기로 결심한 어느 여자가 있다.